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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대한민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 노관식은 골머리를 앓았다.
그렇지 않아도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최근 하루가 다르게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뒷세계의 일 탓이다.
“성질 같아서는 싸그리 붙잡아 미궁 깊숙한 곳에 처박아 버리고 싶은데 말이지.” 그런 심정과는 별개로 협회든 정부든 워낙 뭘 받아먹은 이들이 많다 보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당장 지금만 해도 저놈들이 친 사고의 뒷수습을 위해 나서는 놈들이 태반인데, 노관식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당장 입에 개거품을 물고 막을 것이 분명했다.
“이 개돼지 놈들… 언제 한번 날 잡아서 싹 다 치워 버려야지 원… 저런 것들을 원로라고 데리고 있으니 협회 꼴이 이렇지.” 답답함에 한차례 한숨을 내쉰 노관식이 의자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썩을 놈들. 날뛸 거면 자기 나라에서나 날뛰란 말이다. 애꿎은 남의 나라에서 지랄 떨지 말고.” 이게 다 나라에 힘이 없어서 그렇다.
SS랭크는 몰라도, SA랭크라도 좀 많았다면 일본이나 중국의 헌터들이 감히 이런 짓을 벌일 수 있었을까?
이게 다 성재명 탓이다.
그나마 쓸 만하던 이들까지 경험을 쌓아 준답시고, 다 사지로 끌고 가더니 지금은 남아 있는 인재가 없었다.
당시 성재명이 데려갔던 이들 중 일부만 살아 있었다면, 절대 나라 꼴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근래 들어 점점 전성기 때의 수준을 회복하고는 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힘, SS랭크의 존재가 없었다.
“…그나마 은하의 권제나 그 아가씨가 SS에 가깝다고 했던가?” 쌍룡의 길드장이나, 자신 역시 수십 년 동안 넘지 못한 벽을 과연 권제나가 넘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가능하다면 빨리 그 벽을 넘어줬으면 하고 노관식은 바랬다.
그래야 이번 일과 같은 일이 앞으로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아닌가?
차라리 성재명이 있을 때처럼 절대자 한 사람 눈치를 보는 게 낫지. 지금처럼 이곳저곳 눈치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석호야.” 나지막이 부르는 목소리에 협회장실 한쪽에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 하나가 조용히 들려왔다.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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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 상황은 좀 엔트리파워볼 어떻든? 변화는 있고?” “…백중지세입니다. 본격적으로 S랭크들이 일선에 나서기는 했지만, 그간 중국 쪽 S랭크들의 소모가 워낙 컸던 탓에 큰 변화는 없어요….” 천장을 향해 높이 뻗은 서류 더미 속에서 황석호가 답했다.
며칠째 제대로 쉬지도 못한 그의 얼굴은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와 있었다.
“쯧… 싸울 거면 화끈하게 싸워야지. EOS파워볼 찔끔찔끔 싸워서 어쩌잔 거야? 그냥 시원하게 한 번에 결판내면 얼마나 좋아?” -누가 쪼잔한 뒷세계 놈들 아니랄까 봐.
불만스레 중얼거린 노관식이 탁자 위에 올려져 있던 서류 하나를 들어 올렸다.
가볍게 그 내용을 훑어보며 노관식이 재차 말을 이었다.
“블랙 마켓 쪽은 또 로투스바카라 어때? 얼마 전에 전 사장이 다시 권력을 잡았다고 들었는데?” “당장 크게 나설 생각은 없는 것 같던데요.” “…하긴. 중국과 일본, 양쪽 다 덩치가 어지간히 커야지. 당장 SA랭크 하나 없는 그쪽에서 무슨 수가 있겠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야지.” 노관식이 살펴보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조용히 팔짱을 꼈다.
“그래서 개입할 틈이 나오려나?” “…틈이야 만들면 되지만, 빼돌릴 전력이 없죠.” “끄응… 그렇담 대형 길드들 쪽은 어때?” “‘쌍룡’이야 언제나처럼 침묵 중이고, ‘새벽’이나 ‘북두’는 아무래도 나설 겨를이 없을 겁니다.” 능숙하게 서류를 살피며 답하는 황석호의 모습에 노관식이 찌푸려진 제 미간을 문질렀다.
“하기야 둘 다 저번 용암 구역 원정에서 큰 손해를 봤었지.” “예. 북두야 둘째치고, 새벽은 길드장이 직접 나섰다가 그대로 실종됐으니, 상황이 말이 아닐 겁니다.” “으음… 분명 SS랭크 몬스터랬나?” 황석호가 한차례 고개를 주억였다.
“그동안 발견되지 로투스홀짝 않았던 용암 구역의 에어리어 보스가 분명합니다. 소식을 듣기로는 다른 5대 길드와 연합해서 토벌할 계획이라 합니다.” “하필 나타나는 타이밍도 참… 협회로서 도와주지 못할망정, 뒷세계 일을 해결해 달라고는 못 하겠지?” “당연하죠.”
덤덤히 고개를 끄덕이는 황석호의 모습에 노관식이 한숨을 내쉬었다.
“‘은하’나 ‘성호’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둘은 새벽과 북두의 요청에 SS랭크 몬스터 소탕을 위한 협동 원정대를 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재명이 죽은 뒤로 처음 등장한 SS랭크 몬스터이니 만큼 어떻게든 잡고 싶겠지.” 거기다 SS랭크 몬스터의 토벌에 성공하면, 그 사체가 가지는 가치 역시 상당하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이 뻔했다.
괜스레 답답해지는 마음에 오픈홀덤 노관식이 ‘끙’ 앓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런 노관식의 모습을 흘깃 살핀 황석호가 조용히 의견을 내놓았다.
“대형 길드 말고 다른 길드에 의뢰하는 건 어떤가요?” “다른 길드 어디? 어지간한 곳이라면 다들 이번 토벌에 참여한다 바쁠 텐데. 뭣보다 중소 길드 수준이라면 이번 판에 끼지도 못해. 적어도 SA랭크는 있어야지.” “그런 곳이 한 곳 있지 않습니까?” “…흐음. 거길 말하는 건가?” 번뜩 떠오른 길드의 존재에 노관식이 무심코 탄성을 내뱉었다.
“‘화랑’인가.” “예, 송재하 헌터라면 잘해줄 겁니다.” “…으음.”
노관식이 가볍게 탁자를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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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은 대형까지는 아니고 중견급 길드로서, 반년 전 미궁 이상 사태로 인해 부길드장과 길드 전력의 상당수를 잃고 점점 쇠퇴해 가던 곳이다.
그대로 놔뒀다간 얼마 안 가 길드가 해체되는 것이 당연했겠지만, 길드장인 송재하가 협회에 전적으로 숙이고 들어오며 어찌어찌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비록 그 대가로써 협회의 이런저런 일들을 처리하는 사냥개 신세가 되기는 했지만, 그 덕에 협회의 전적인 지원을 받고서 과거만큼의 위세를 최근에 회복했다.
무엇보다 길드장인 송재하 본인이 악착같이 노력한 덕에 최근 SA랭크로 성장함에 따라, 시간만 주어진다면 머지않아 5대 길드만큼의 대형 길드가 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었다.
“…흐음. 송재하 그 재수 없는 녀석이 과연 이번 일을 받을까? 안 그래도 요즘 대가리가 커져서 슬슬 반항하던 것 같던데.” “앞으로도 협회 차원에서의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면 될 겁니다. 기존 대형 길드들의 견제도 있고, 화랑도 대형 길드로 성장하려면 저희 지원이 반드시 필요할 테니까요.” “흐음….”
황석호의 이야기에 노관식이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저울질해 보았다.
“좋아. 화랑에게 맡기는 거로 하지. 송재하 그놈하고 약속을 잡아주겠나?” “직접 만나실 생각인가요?” “그동안 열심히 사냥개 노릇을 했으니 한 번쯤 만나줄 때도 됐지. 뭣보다 길드장 본인이 SA랭크니까. 구색은 맞춰야 할 거 아냐?” 거기까지 말한 노관식이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이 기회에 목줄을 좀 더 단단히 멜 필요도 있고.’ 느긋한 걸음으로 창가까지 다가간 노관식이 슬며시 뒷짐을 지고 섰다.
“그것보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단 말이지.” “…중국의 개망나니 때문인가요?” 보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황석호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 아무래도 장웨이 뒤에 있는 게 다름 아닌 그 ‘왕퐝’이니까. 이번 일이 어떻게 되냐에 따라서 직접 나설지도 모르겠군.” “…송재하 헌터에게 주의해달라 전해야겠군요.”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장웨이만큼은 반드시 살려둬야 될 거다.” “…쉽지 않을 것 같네요.” “세상 쉬운 일이 어딨겠어?” 한숨처럼 내뱉은 노관식의 시선이 흘깃 창밖을 향했다.
협회를 드나드는 헌터들의 모습이 시야를 한가득 채운다.
이 작은 나라에 저렇게 많은 헌터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숫자였지만, 그럼에도 그리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저렇게 빈 쭉정이들만 많아서야… 이게 다 성재명 그놈 탓이야. 그놈 탓….” 남들은 대한민국 최초의 SS랭크 헌터이자, 최강의 헌터라는 이유로 성재명을 찬양해 마지않았지만, 그 실체를 알고 있는 노관식으로서는 성재명은 위인이라기보다 악인에 한없이 가까웠다.
물론 성재명이 있을 당시 보여줬던 여러 행적들은 아무리 노관식이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당시 한 명의 절대자로서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그 마지막 행보만큼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놈의 모험이 뭔지. 미궁이 뭔지.
노관식은 성재명이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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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망할 놈… 반드시 돌아오겠다며 그리 호언장담을 하더니….” 10여 년 전, 자신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떠난 성재명의 뒷모습이 떠올라 괜스레 야속하다.
차라리 자신도 그때 그를 따라나섰다면….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 부질없는 생각이야….” 가볍게 고개를 내저은 노관식이 재차 창밖을 바라보았다.
협회를 드나드는 수많은 헌터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던 노관식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어디서 SS랭크 헌터 하나 뚝- 하고 안 떨어지려나?” 한탄처럼 중얼거린 소망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이뤄질 일 없는 소망이었다.
몬스터도 아니고, 헌터가. 그것도 헌터 최강이라 할 수 있는 SS랭크가 어찌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 있겠는가?
자신이 생각해도 웃긴 생각에 노관식이 피식 웃었다.
“기대할 만한 건 은하의 그 아가씨뿐이군.” 당장 내일이 될지, 아니면 수십 년 뒤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노관식은 헌터 협회의 협회장으로서, 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이 작은 나라에 두 번째 SS랭크가 탄생하길 간절히 바랬다.
‘그래야 나도 좀 편히 일할 테니까.’ 자신의 나라에 SS랭크 헌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이미 성재명 때부터 익히 경험해 온 바, 여러 의미로 꿀을 빨기 위해서라도 SS랭크의 존재가 노관식은 간절했다.
‘그래도 이번에는 제대로 목줄을 채워야지… 성재명 때처럼 끌려다니는 건 한 번이면 족해.’ 과연 인류 최강인 SS랭크 헌터에 목줄을 채울 수 있냐, 없냐는 둘째치고 그 필요성만큼은 확실했다.
법이나 선 없이 날뛰는 헌터는 이미 몬스터나 다를 바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당분간은 지금처럼 주변 눈치나 살살 봐야 된다는 건데.” 그리 생각하니 당장 또다시 머리 한구석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정말 성질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미궁 깊숙한 곳으로 몬스터나 잡으러 떠나고 싶은데….
“쯧.”

흘깃- 황석호를 돌아본 노관식이 짧게 혀를 찼다.
저놈은 언제쯤 제대로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으려나?
다 때려치우고 떠나기에는 이후 협회 꼴이 어찌 될지 정말 불 보듯 뻔했다.
‘적어도 저놈 저거, 사람 될 때까지는 못 떠나지.’ 그동안 자신이 어찌 키운 협회인데, 이대로 은퇴했다가는 금세 망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다른 건 다 어찌어찌 참아도, 절대 그 꼴만은 못 본다.
그렇게 다시 한번 차오른 은퇴에 대한 열망을 마음 한구석으로 조용히 밀어낸 노관식이 황석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영 어리숙하기 그지없었다.
노관식이 재차 짧게 혀를 찼다.
그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노관식의 행동에 황석호가 불만을 표했으나, 언제나 그렇듯 노관식은 이를 무시했다.
“…그것보다 석호야.” “…왜요?”

노관식의 부름에 황석호가 불만스레 답했다. 그 뚱한 대답에 노관식의 미간이 한차례 찌푸려졌다.
금세 불만을 드러내는 모습이 역시 너무나 어리숙하다.
적어도 자기 속마음 정도는 어련히 알아서 숨길 수 있어야 될 텐데.
역시 은퇴는 당분간 미뤄두는 편이 좋았다.
저런 태도의 원인이 평소 자신의 행동 때문이란 것을 전혀 짐작도 못한 노관식이 애써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꾹- 눌러 참으며 말을 이었다.
앞서 가볍던 태도와 달리 사뭇 무거워진 어조였다.
“저번에 그건 어찌 됐냐?” 나지막이 물어오는 질문에 황석호가 움찔 몸을 떨었다.
이리저리 찌푸려졌던 표정을 곧장 바로 고친 황석호가 노관식과 같은 무거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따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래. 중요한 안건이니 확실히 관리해라. 다른 건 몰라도, 그건 함부로 밖에 나돌 일이 아니야.” “…명심하겠습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황석호의 모습을 잠시간 묵묵히 바라보던 노관식이 이내 시선을 돌렸다.
사실 협회가 바쁘기는 했지만, 굳이 이번 뒷세계 일에 나서고자 한다면 나서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동안 노관식 본인이 키워온 협회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도 않았으며, 충분히 개입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노관식이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번 일이나, 그 뒤에 있을 SS랭크 헌터의 존재나, 미궁에서 발견된 SS랭크 몬스터의 존재보다 더 심각한 일이.
이건 어쩌면 대한민국 헌터계를 떠나, 전 세계 헌터계에 큰 파급을 불러올 만한 일이었다.
아니, 이번 일이 알려진다면 분명 그리될 것이다.
큰 파급 따위가 아닌, 커다란 지각 변동.
과거 성재명이나 샤를로트가 죽었을 때보다 더한 충격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흘깃- 노관식의 시선이 제 테이블 위로 향한다.
가지런히 쌓여 있는 이런저런 서류들 사이로, 꽤 두툼한 서류 뭉치가 보인다.
그 맨 위에 적힌 한 줄의 글자.
‘Chimera Project.’ 그것을 읽는 노관식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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